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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ousness

냉정한 학생들

다재소능 2010. 1. 2. 21:45


1. "전선생 A선생 어때요? 교무실에서 뭐 특별히 문제되는 발언 이런거 하지 않나요?"

토요일 오후 특강을 다 마치고, 잠시 원장실에 원장 선생과 들러서 밀린 급여 얘기도 할겸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원장 선생님이 불쑥 나에게 물었다.

이제 두어달 남짓 같이 근무했기에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지만 A선생에게 대해 대충 서술을 하자면,

1) 나이는 많음(나보다 10년 정도 위)
2) 영어 전임
3) 매우 의욕적, 스스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큰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는 스타일
4) 학생들을 볶아가면서 엄청나게 공부를 시킴

"네? 저야 뭐 교무실에 그리 오래 있는 편이 아닌지라, 뭐 활발하시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A선생 안티가 너무 많아. 영어 선생 바꿔달라는 애들도 많고 이것까지는 내가 그 선생님이 참 열정적이고, 의욕적이라 넌지시 말해줘서 스타일 좀 바꾸면서 데리고 갈랬는데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평판이 별로 안좋네..."

대화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결국 새해 첫날부터 우리 학원의 영어 전임 선생이 교체될 것 같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학생들은 매우 객관적이다. 조금 더 무섭게 보면 냉정하다


2. 당신은 학원 강사이다. 학원에서 수업이 끝난 후, 과제를 내줬다. 그리고 다음 수업 시간에 강의실에 들어갔다. 이 때,

1) 과제 검사를 철저히 하고, 안한 학생들을 매우 엄하게 조진다.
2) 대충 넘어간다. 


학생들은 1)번 2)번 중 어떤 선생을 좋아할 꺼 같은가?

2)번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참 잘못 생각한 것이고, 학생들을 과소평가 하고 있다.

나도 처음에 엄청나게 놀랐지만, 지난 해 학원에서 원장선생이 비밀리에 실시한 강의 평가에서 나온 B라는 영어 선생에 대한 불만 사항이 '숙제를 내주고도 검사를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다.
(매우 다행히도, 나의 경우엔 숙제를 안 해오면 지옥 끝까지라고 따라가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응징을 하는 스탈이라서 문제가 전혀 없었다ㅋ)

중,고등학생(고등학생의 경우 고1 정도까지만 포함)이라고 애들이 무슨 생각이 있겠어? 그냥 대충 잡담하고 편하게 가르쳐주는 선생을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학생들은 매우 냉정하다. 얄짤 없다. 대충 때우려고 하면 바로 "저 선생 가르치는 내용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겠다"라고 Hot-Line으로 원장 선생에게 보고가 올라간다.


3. 작은 동네 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지역에서 강의를 하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억지로 끌려왔기에 공부하는걸 정말 싫어하지만,

학생들을 무시하면 안된다. 그들은 이미 매우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으며, 평가를 할 때에는 객관적이며, 냉정하다.


4. 그런데 우리 나라의 많은 대학 교수들은 중,고생도 아닌 대학생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제도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들의 철밥통을 보장 중이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사교육을 여전히 싫어함에도 왜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이 공교육의 불신하고 사교육에 목을 매다는지 이유는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자체 정화 기능이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가 강력한 원인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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