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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ousness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 한공기

다재소능 2010. 4. 29. 00:23

20살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당연히 서울로 가야지" 라고 외치며 부산집을 떠났으니

이제 만으로도 12년째 객지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곳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곳이라고 들었고, 서울 사람들은 다 깍쟁이라고 들었으나

뭐 더럽게 인간들이 많이 살고, 무지 복잡하고, 정신없고, 뭐든지 더럽게 비싸다는 걸 제외하면

그냥 저냥 살만한 곳이었다.



1. 20살 무렵

우선 가장 행복했던건 집에서 떠나서 무한한 자유(어쩌면 방종이겠지만)를 만끽할 수 있었다는 거

예를 들어 술을 마시다가 11시 전후로 서울이 집인 애들은 하나 둘씩 소환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지만

난 행여라도 집에서 전화가 오면 "아 지금 집에 들어가는 길이에요~" 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그 시절에 영상 통화가 되던 시절도 아니고, GPS가 있어서 위치 추적이 되는 것도 아니니 만사 오케이였지






2. 30살 무렵

너무 오랜 기간 부실한 밥(기껐해야 조미료 잔뜩 들어간 먹고 나면 금새 배가 꺼지는 식당 밥)을 먹다보니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찰진 밥이 먹고 싶어졌다.

때마침 부산에서 어머니가 정말 오랜만에 겨울 이불 등을 좀 빨아주셔야겠다고 올라 오셔서

오랜만에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덕분에 우리집의 밥솥은 정말 오랜만에 가열이 되었다)을 먹으면서

어머니와 함께 우리 꼴데 경기를 보고 있으니(더군다나 강풍기님께서 9회말 끝내기 안타를 쳐주시니)

공부고 취직이고 뭐고 그냥 백년 만년 이렇게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 먹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말을 어머니께 했다가 혼났다ㅋㅋ)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 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서울의 달의 주제곡이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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