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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피리 부는 사나이

다재소능 2010. 2. 6. 03:53


<이미지 출처 : 인터넷 서점 알라딘(http://www.aladdin.co.kr/)>

1. 김기홍의 <피리 부는 사니이>, 제 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다.


2. 국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책을 읽은 것과는 거의 담을 쌓고 지내는 내가 오랜만에 읽은(정확히 말하자면 읽게된) 책이다. 이 글의 작가와의 약속이기도 하고(제이미 캣님과의 약속이기도 하군.;), 그래서 무식하기에 쓸 수 있는 용감한 서평(?)을 감히 써보고자 한다.


3. 우선 전체적인 느낌을 서술하자면,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소설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재미라고 생각하기에(지루한 책은 읽다가 보면 금새 덮어 버리고 말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잔잔한 듯 하면서도 계속 긴장감을 유지해주면서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필력은 매우 칭찬해주고 싶다.


4. 특히 전반부의 대학 생활에서 나타나는 매우 익숙한 풍경들과 느낌들은 밀레니엄 초반, 혼동의 시대에 대학 생활을 한 사람들은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다(더군다나 서강대생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정현과의 하룻밤(?) 이후 집단 vs 개인의 대립, 다수의 언플과 이에 대응하는 개인의 모습에 대한 서술은 감히 이 소설의 백미로 꼽고 싶다.


5. 이제 심사평에도 언급되어 있고, 이 글의 서평을 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하는 갑작스러운 공간의 이동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할 것 같다. 

서울 -------------------> 런던

이렇게 전체적인 공간 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공간 이동에 대한 첫 느낌은 매우 천천히 얕은 경사진 길을 내려가면서 주위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감상하다가 갑자기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가파른 내리막을 등가속도 운동을 하며 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처음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자연스럽게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인 '나'는 분명 갑작스럽긴 하지만  런던이라는 공간으로 가야했어야만 한다는 데 동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소설의 전체 기획에서 이미 런던행(런던이라는 공간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공간 이동 자체가 아무런 개연성이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히 계속해서 작가는 주인공의 런던행에 대한 근거를 지속적으로 소설 곳곳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 피리 부는 사나이 1권, 2권 이런 식으로 말이다. 작가가 보여준 필력과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힘이라면 충분히 1,2부로 나눠서 쓸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기작이 나온다면 2권 이상의 책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는 공간 이동에 대한 거부감의 문제는 앞으로 글을 쓰는데 있어서 작가가 풀어야 할 숙제임은 분명하다.


6. 소설의 전반부를 주인공인 '나'와 함께 이끌어가는 인물은 수연과 우진이다. 수연은 이 소설의 키워드인 셈이고, 우진은 이후 등장하는 이반과 함께 '나'의 모습을 더욱 더 잘 드러내 보여주는 역학을 하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다. 재미있는 것은  학교 축제에서 타로점을 보던 날을 기준으로 수연은 수면 밑으로 사라지고 정현이 수면 위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전반부가 수연의 무대였다면 후반부의 정현의 무대인 것이다(물론 수연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그녀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녀는 이 소설의 키워드 인물이기에 계속적으로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구심점의 역할을 한다.)


7. 개인적으로 정현이라는 인물이 가장 마음에 든다.(내가 조금 강한 여성을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물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인공인 '나'를 제외하곤 모두 특이한 이력을 가진 개성적인 인물들이다. 하지만 나는 가장 매력적이고 개성적 인물로 정현을 꼽고 싶다. 보통 말도 안되는 남녀간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나게 되면 현재의 사회 시스템이 남성중심적 사회이기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받고, 피해를 받는 인물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현이 보여주는 모습은 오히려 남자 주인공인 '나'를 배려해주는 모습(그 이유가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같은 감정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중반부 이후 '나'를 도와 테러리스트 집단에 매우 합리적인 사고를 하면서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8.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하루키의 <해번의 카프카>가 떠올랐다.(아무리 책을 잘 읽지 않는다 하여도 다행히도 이 정도의 유명 작품은 읽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20대를 보낸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서 그의 분위기, 필체 등과 같은 하루키의 잔상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든다. 하루키적인 냄새를 지우는 것,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자신은 아닐지라도, 책을 읽은 독자들이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 이는 앞으로 작가가 이를 뛰어 넘어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있어서 남겨진 숙제로 보인다.


9. 서평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글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김기홍 화이팅! 니가 자랑스럽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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