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없는 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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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 공화국

다재소능 2009. 6. 19. 04:54


장면 1.

집에서 나와 대흥역에서 학교까지 걷는데, 보도블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 있다가 학원을 가는 날이라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또 보도블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어 이상한데? 아직 한 여름인데 왜 이러지?'

보통 연말이 되면 남은 예산을 쓰기 위해 매년 연례 행사처럼 멀쩡한 보도블록을 가는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였다.(사실 이것만 해도 정말 부끄러운 후진국형 졸속 행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내가 입은 옷은 반팔티란 말이다. 정말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알고보니 정부에서 지자체에 예산 선집행을 명령했다고 한다.(확인은 못했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정치 기사엔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장면 2.

4대강을 살리겠다고 한다. 참 좋은 의도이다. 더군다나 낙동강 하류에서 생활용수로 쓰기도 빡센 저질 물을 받아 먹던 부산 시민이었던 나에게 수질 환경을 개선한다는 건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예전에 위천공단 가지고 싸울 때, 대구사람들과 부산사람들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었던 기억도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게 웬걸? 비용이 200억도 아니고 20조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환경 관련 과학자들을 말을 들어보니, 단순히 하천의 토사만 퍼내는 지금의 방식으로 일시적인 수질 개선 효과만 있을 뿐, 오히려 수질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요새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땅 파는데 미친 나라인거 같다. 수장이 건설 쪽에서 일어선 사람이어서인지 몰라도, 최근 돌아가는 모양새는 정말 '토목 공화국' 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 맞는다. 무조건 땅을 파야한다는 거다. 그게 대운하가 되었든, 보도블록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이러다간 곧 북한의 핵 도발에 맞서 평양 주석궁까지 땅굴을 파서 특공대를 투입하겠다고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을 공기총으로 쏴 죽여버리는 싸이코패스들의 얘기 같은 우울한 기사만 계속 들려오는 최근에 정부의 땅파기 행정은 날 더 우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