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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No.20 임수혁

다재소능 2010. 2. 8. 02:11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DB(www.youhapnews.co.kr)>

1. 저녁에 후배들과 고기를 먹으면 담소를 나누고 있던 시간..

K군으로부터 문자가 한통 왔다.

"아 임수혁 선수가 결국 돌아가셨군요......"


2. 2010년 2월 7일 오전 7시.. 결국엔 임수혁은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경기 도중 잠실구장의 2루에서 쓰러진 것이 2000년 4월 18일이니 10년 간 병상에 누워 고독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한 셈이다.


3. 임수혁은 롯데팬인 나에게 있어서 큰 의미로 다가오는 선수 중의 하나이다.

92년의 감동의 우승 이후, 야구에 흥미를 가지고 경기를 챙겨보던 그 시절.

자이언츠의 포수자리는 수비를 위한 자리이며 타격은 젬뱅인 포지션이라는 나의 선입견을 깨어준 자이언츠의 최초의 공격형 포수이기 때문이다.(실제로 임수혁의 등장 이전까지 자이언츠의 포수는 수비형 포수로 명성을 떨친 선수는 많았지만 옆 동네의 만수형과 같은 홈런을 펑펑치는 포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07년 강민호가 두 자릿 수의 홈런을 기록하기 전까지 자이언츠의 포수 출신 중에 한 시즌에 15홈런을 때려 낸 유일한 선수가 바로 임수혁이었다.


 
<임수혁의 연도별 성적 : 자료 출처 - 스탯티즈(www.statiz.co.kr)>

그는 90년대 중반 마해영과 함께 "마림포"로 불리며, 어찌 보면, 조금은 답답했던 '롯데의 타선은 소총부대'라는 인식을 깨어줄 수 있는 중장거리 타자였으며,

커리어하이인 96년도에는 113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1 홈런 15 타점 76 OPS 0.843을 기록하며, 공격형 포수란 무엇인가를 보여줬던 제대로 보여줬었다.

그랬기에 그의 사고 소식, 투병 소식은 더욱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4. 임수혁하면 99년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이 때 내가 느꼈던 감동은 죽는 순간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플레이오프 7차전, 대구 관중의 델몬트병(얼마전 박동희 기자의 "미스터베이스볼" 인터뷰에서 박정태가 호세가 맞은 물병은 델몬트 쥬스병이었다가 말했음) 투척 이후, 호세의 방망이 난동 사건, 잠시 경기가 중단되고 다시 재기된 경기에서 그는 9회초 당시 특급 마무리였던 임창용을 상대로 동점 투런 홈런을 뽑아낸다.

그 때의 감동은 말로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 당시 생중계로 그 경기를 보고 있던 나에게 임수혁의 극적인 동점 투런포는 너무나 강한 인상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그 때 난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5. 하지만 1년 뒤 그는 경기 도중 쓰러진다.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쓰러졌을 당시, 응급처치만 제대로 되었어도 분명히 그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의 응급치료 체계와 안전불감증은 여전히 제2, 제3의 임수혁을 만들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DB(www.youhapnews.co.kr)>


6.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일어나라 임수혁"을 외쳤던 많은 팬들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임수혁은 나의 가슴 속에, 그리고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Goodbye Giants No. 20 임수혁



7. 부디 편히 쉬시길.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p.s) 만약 임수혁의 등번호 20번을 영구결번 지정하지 않는다면, 자이언츠는 또 한번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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