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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자이언츠

다재소능 2009. 7. 17. 07:36


1) 전제1 :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2) 전제2 :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3) 결론 : 자이언츠 팬일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나는 자이언츠를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이건 원죄와도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스머프 유니폼(90년대 중반까지 입었던 원정 유니폼의 색깔이 파란색이었음)을 입고 경기를 하던 시절의 자이언츠는 비록 해태만큼의 강력함도, 삼성만큼의 화려함도, 빙그레만큼의 임팩트도 가지지 못한 팀이었지만 적어도 타팀 팬들에게 "꼴데"라고 놀림을 받는 약체 팀은 아니었다.

1. '윤하'의 비밀번호486

"하루에 네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번 웃고 여섯번의 키스를 해줘♬"

2. 자이언츠의 비밀번호8888577

"7년에 네번 꼴지를 하고 두번의 7등 단 한번의 5등을 해줘♬"

그렇다. 꼴데라고 놀림을 받는 2000년 이후의 자이언츠는 8888577이라는 최악의 순위를 기록한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법이다. 2000년대 초중반의 KBO는 현대와 삼성의 무대였고 최근 2년간은 SK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들은 강했고 승리를 밥 먹듯이 했다. 자이언츠는 전력상 하위권에 맴돌 수밖에 없던 팀이었다. 박정태-마해영-호세로 이어지던 99년의 공포스러운 클린업 이후 자이언츠는 세대교체에 실패를 하게 된다. 

팀전력은 하루 아침에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스카우트 팀의 무능력함으로 인해 몇년 간만 아마선수 지명에서 삽질을 하거나 혹은 포텐이 풍부한 선수를 지명하더라도 프런트와 코칭스태프의 무능력함으로 유망주 육성에 실패하면 우리나라와 같이 트레이드와 같은 방식으로 구단 간의 선수 이동이 매우 제약적인 좁은 시장에서는 팀전력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자이천츠의 경우 모골프 감독이 재임중에 팀을 아주 제대로 말아드셨기 때문에 그 후유증은 너무나 오래 기간 팀을 바닥에서 허우적 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열성적이기로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부산의 야구팬들이 요구하는 것은 밥 먹듯이 승리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자이언츠 팬들은 정태형을 그리워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선수들이 경기할 때 '근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얼마전까지의 자이언츠라는 팀의 선수들은 "패배의식"으로 쩔어 있었다. 오죽하면 "퇴근본능"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실제로 8888을 한창 찍으면서 꼴데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던 그 시절, 경기를 보고 있으면 선수들은 모두 동태 눈까리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손민한은 홀로 고독하게 마운드를 지켜왔고, 뒤늦게 등장한 이대호는 '이대호와 여덟난쟁이'라는 비아냥 속에 홀로 고군분투했다.


작년부터 자이언츠에는 큰 변화가 2가지가 생겼다.

1. "No Fear"를 주구장창 외치며 열심히 박수를 치는 외국인 감독 로이스터의 부임

나는 로이스터가 처음에 감독으로 임명되었을 때에만 해도 "웬 듣보잡?"이라고 하며 신뢰를 전혀 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로이스터의 열렬한 지지자는 아니다. 하지만 몇년 간의 지명 상위권 픽에서 착실히 모았던 선수들이 로이의 박수와 함께 포텐셜이 마구마구 터지지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가을에도 야구하자"라는 구호를 외쳐대던 자이언츠 팬들에게 08년은 잊지 못할 한해가 되었다. 3위의 성적으로 포스트시즌에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제는 우리 팀이 강해졌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맞이한 09년. 나 같은 경우에도 스토브 리그 기간 중에 FA홍성흔을 영입을 보면서 올해는 우승이다 라는 특유의 꼴레발을 마음껏 떨었었다.

그런데 여러가지 악재 속에서 5월까지 자이언츠는 최하위를 맴돌게 된다. 로이스터는 주축 선수들이 돌아오는 6월에 대반격을 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팬들은 별로 없었다. 나 역시 5월 말까지 경기를 볼 때마다 "에휴 너희들이 그렇지 뭐" 라며 담배만을 찾았었다.

그런데 정말 6월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7월 17일 현재 4위에 랭크되어 있다.
(한 때, 승패차가 -11까지 벌어졌었는데 어느새 5할을 회복하고 그것도 모잘라 +2를 마크하고 있다)

어제인 7월 16일 사직 한화전은 달라진 롯데의 모습을 보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더이상 선수들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지 않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어느 팀을 만나든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마음이 되어 말하는 듯 하다.

2. 김해에 2군 연습장인 상동야구장의 건립

더욱 고무적인 것은 최근 자이언츠의 상승세가 주축 선수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활약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손민한은 정상 컨디션이 아니고, 주전 포수인 강민호 1번 타자 김주찬의 부상 중)

최근 자이언츠 선수단의 depth를 보면서 상동야구장 한번 잘 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베어스의 이천 베어스 필드에서 나오는 마치 화수분과도 같은 선수들만큼은 아니지만 더이상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심한 팀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 경기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선수들이 이번에 얻은 기회는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눈빛을 보이면서 경기에 임하고 이는 더이상 자이언츠의 로스터에서 철밥통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에 선수단 전체 경기력이 매우 향상되는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는 자이언츠가 포스트시즌에 못 나가더라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눈빛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자이언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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