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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더(Fodor)의 심성 내용에 관한 견해 -3- 본문

Philosophy of Mind

포더(Fodor)의 심성 내용에 관한 견해 -3-

다재소능 2010. 3. 7. 02:29


원자론 그리고 개념 역할 의미론
(Atomism and Conceptual Role Semantics)


- 포더는 대부분의 다른 심리철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과는 달리 원자론(atomism)을 옹호한다. 포더의 내용에 관한 이론이 원자론인 이유는 이미 앞서 밝혔듯이, LOT 기호의 내용이 다른 기호들 간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 비-원자론자들에 따르면, 어떤 유의미한 항(기호이든 개념이든)은 유의미한 항들의 체계에 속해 있으며, 적어도 다른 것들과 맺고 있는 특징적인 관계로부터 그것들의 내용이 나온다.

=> 예를 들어 개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개라는 개념과 관련된 관계인 동물, 짖음, 사나움 등의 개념 역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포더는 한 개념이 다른 개념을 낳는 증거적(evidental)이고 추론적인 관계를 인식적 연결망(liaison)이라고 이름 붙였다. 따라서 비-원자론적인 개념의 내용은 우리의 개념 도식 속에서 개념이 다른 개념과 맺고 있는 인식적 연결망에 의해 결정된다.


- T부인(Mrs T)의 사례(by 스티치(Stich, 1983))

T부인은 젊은 여성으로 스티치 집의 개인 가정교사이다. 그녀는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맥킨리 대통령의 암살에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나이가 들어 그녀는 퇴행성 기억 상실을 앓게 되었다. 그녀는 맥킨리 대통령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의 질문에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맥킨리는 암살되었다’ 라는 주장을 한다. 실제로 그녀는 죽은 존재와 살아 있는 존재 사이의 차이점을 잊어버린 듯 보인다. 스티치는 그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T부인이 정말 맥킨리가 암살되었다고 믿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스티치는 ‘만약 누군가가 삶과 죽음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암살에 대해서도 알 수 없을 것이고, 이 경우 맥킨리가 죽었다고 믿을 수 없다’ 고 설명한다.

=> 위의 사례는 암살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X가 암살되었다'라는 것으로부터 'X가 죽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러한 비-원자론의 주장은 순환성 때문에 내용에 대한 적절한 자연주의 이론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 그러나 순환성의 문제를 피하면서 비-원자론적 주장의 핵심적인 통찰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증거적이며 추론적 관계인 추론을 인과적 과정에 호소하는 관계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것이 다른 개념에 대한 내용을 가정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가?


- 그 결과 이러한 설명은 LOT 기호들과 감각 입력과 운동 출력 사이에 성립하는 인과적 관계를 통해 기호들의 내용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는 내용에 대한 기능주의적인 자연주의 이론을 구성한다. 이는 개념 역할 의미론(줄여서 CRS)으로 알려져 있다. CRS는 철학에서 폭넓게 주장되는 이론이다. 셀라스(Sellars)는 CRS의 초창기 옹호자였으며, 최근에는 블락(Block), 필드(Field), 로어(Loar), 라이칸(Lycan) 등이 이 이론의 지지자들이다.


- 포더는 CRS에 대해 두 가지의 주요한 반론을 펼친다.

[1] CRS는 지향적 심리학의 성립가능성을 와해시키는 함축을 가지고 있다.

=> 따라서 통속심리학을 옹호하는 포더의 기획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이다. 포더는 CRS가 자기 논박적인 이론이라고 비판한다.

[2] CRS는 사고의 주요한 특성인 구성성(compositionality)과 양립불가능하다.

=> 비-원자론의 극단적인 형태는 전체론이 된다. 전체론자들에 따르면, 기호 혹은 개념의 내용은 언어 혹은 그것이 속한 개념적 도식 내에서 다른 항과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들의 총체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언어 혹은 개념적 도식에 속해 있는 기호와 개념은, 의미의 차원에서 동등할 수 없다. 포더는 CRS를 옹호하는 것(그리고 일반적으로 비-원자론을 옹호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전체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이는 기호 혹은 개념의 의미를 결정할 때, 인과적 연결 사이에 뚜렷한 원칙이 없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어떤 기호나 개념이 다른 기호들 혹은 개념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서 내용을 결정한다면 전체론적인 결론은 피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 전체론을 피하면서도 비-원자론을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방법은 분석-종합 구분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의 기본적인 생각은 의미-결정의 역할을 하는 분석적 참에 대응하는 기호들의 관계를 인과적 연결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개는 동물이다’라는 믿음과 ‘개는 사납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보자. 그 결과 DOG의 토큰은 내 머리 속에서 ANIMAL과 FIERCE의 토큰에 의해 야기된다. 그러나 오직 전자만 DOG의 내용을 결정하는데 인과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개는 동물이다’는 분석적이고 ‘개는 사납다’는 종합적이다.


- 내용의 자연화라는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제안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분석-종합의 구분은 의미론적인 구분이다. DOG-ANIMAL 연결이 DOG의 내용을 결정하는데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개는 동물이다’라는 문장이 분석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되고, 이것은 순환성의 위험에 빠진다. 그 누구도 의미에 호소하는 전술을 사용해 기호의 의미에 대한 자연주의적인 의미에서의 합법적인 견해를 제시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개’라는 표현이 사용된 분석 문장과 종합 문장을 비-의미론적인 용어를 이용하여 구별할 수 있는 원칙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힘들어 보인다.


- 포더는 콰인(Quine)의 분석-종합 구분에 대한 공격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반론을 제시한다.


나는 매우 진지하게 의미의 문제와 사실의 문제 사이에 원리적인 구분이 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콰인이 맞았다; 분석/종합 구분은 가능하지 않다. 현재의 맥락에서, 이것은 내용을 결정하는 심적 상태간의 인과적 연결과 그렇지 않는 인과적 연결의 종류를 원칙적으로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즉각적인 귀결은 전체론이 없이는 기능주의(예를 들면 CRS)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심적 상태의 일부 기능이 그것이 내용에 관련이 있다면, 그것의 기능 모두가 내용과 관련된다. (Fodor 1990a, p. x)


- 그렇다면 실제로 CRS에 전체론이 왜 문제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포더는 전체론은 두 개인 혹은 시간의 간격을 둔 동일한 개인이 결코 어떤 개념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하며 따라서 지향적 상태도 공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 포더는 전체론이 지향적 심리학의 성립가능성을 와해시킨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정보이론으로서의 원자론이 장점을 가지고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한 개인이 개념과 지향적 상태를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그 자체가, 지향적 법칙 혹은 일반화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지향적 법칙은 내용을 넘어서 양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 개인은 똑같은 지향적 상태를 공유하는 것에 실패하더라도 같은 법칙에 포섭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P인 경우를 원하면서 그것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Q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다른 사정이 같다면(cetris paribus) 그는 Q를 할 것이다. 확실히 이 법칙은 확연히 다른 믿음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심리학적 삶을 포섭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적 법칙은 지향적 심리학을 구제해줄 수 없다. 포더는 자신 있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투명 문맥들(opaque contexts) 속으로 양화하는 법칙, 예를 들어: (x)(y)(만약 x가 y가 위험하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정이 같다면, x는 y를 피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는 문장은 만약 전체론이 참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러한 법칙은 심적 상태에 대한 공통된 지향성에 따라 유기체에 대한 일반화를 하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시간을 넘어 존재하는 유기체의 심적 상태를 강제하는 법칙은 명백하게 추론, 학습, 인식에서 믿음 고정을 결정한다. (대충 어림잡으면 진정한 심리학의 96.4%) 예를 들어 다른 사정이 같다면, 많은 x들이 F라고 믿으면 믿을수록, 많은 유기체들이 (x)Fx라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법칙은 유기체가 다른 시간에 다른 이유에 의해서 동일한 (양화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믿음 중의 하나가 바뀌는 것이 다른 나머지의 내용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함축하는 지향적 전체론은 성립되기 어렵다. (1990b: 82 n.2)


- 전체론은 개인이 동일한 내용을 갖는 개념 혹은 지향적 상태를 갖게 될 가능성은 배제한다. 하지만 유사한 개념 혹은 내용을 갖는 지향적 상태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내가 표현하는 ‘개’라는 단어의 개념은 당신이 표현하는 ‘개’라는 단어의 개념과 유사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지향적 심리학이 요구하는 법칙은 개념의 내용 유사성 정도면 충분하며, 이 경우에 각 개인들은 유사한 내용을 갖는 지향적 상태를 가질 수 있다.

=> 하지만 포더와 르포어(LePore)는 그러한 견해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일상적인 맥락에서 두 개인이 유사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P, Q, R, S를 믿을 때, 다른 사람은 P, Q, R을 믿을 수 있다. 또한 두 개인이 특정한 명제의 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의 정도는 다르지만 유사한 믿음을 가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유사성의 개념은 전체론자들에게는 유용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두 개인이 유사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그들이 반드시 그들의 내용의 측면에서 동일한 몇몇의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내용-유사성의 개념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만약 두 개의 믿음이 ‘거의 동일한 추론’과 관련이 있다면, 두 개의 믿음은 유사하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더와 르포어는 두 가지의 이유를 들어 이를 반박한다.


1) 만약 두 개의 믿음과 모두 관련되는 특정한 추론이 있다면, 두 개의 믿음이 ‘거의 동일한 추론’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추론은 그들의 전제들과 결론들에 의해서 각각 개별화된다. 당신이 나와 같은 추론을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같은 전제들로부터 같은 결론들에 도달해야만 한다. 따라서 당신의 믿음은 나의 믿음과 ‘거의 동일한 추론’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동일한 내용을 가지는 몇몇의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론에서는 배제되어야 할 가능성이다.


2) 우리는 어떤 추론이 내용을 결정하는데 관련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하나의 대답은 우리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많은 추론은 우리의 개념의 내용을 결정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잘 익은 토마토는 빨갛다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X는 빨간색이다’로부터 ‘X는 잘 익은 토마토의 색이다’라는 추론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토마토를 한번도 보지 못했던 세익스피어는 이런 추론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빨간색의 개념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 결국 전체론자들은 내용-유사성에 대한 실제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포더와 르포어는 그러한 설명의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의미 전체론과 그것들의 지향적 일반화와 양립 가능한 “유사한 믿음”의 개념을 상상하는 것은 비정합적이지는 않다. 문제는 ... 그 누구도 “유사하 믿음”에 대한 마땅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1994: 19)